바람 앞에 등불, 풍전등화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 사달이 날지 모르는 아주 위태로운 상황을 말하는 것이지요.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인간의 삶은 바로 풍전등화였지요.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위태로움을 당신의 자비로 품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주님 탄생 예고 축일’ 을 지내며 단순히 이 날은 하느님께서 너희들의 문제를 해결 해줄 ‘내 아들을 보낸다’ 하고 공지하신 날이 아니라, ‘임마누엘’ 그 위태로운 삶 한가운데로 직접 들어오셔서 함께 계시겠다고 하신 그 약속이 현실이 된 날입니다.
누군가의 삶이 그렇게 위태로울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의 삶에 동참하려고 할까요? 누가 그 위태로움을 함께 나누려고 할까요? 아마 평소에 가까웠던 친구 라고 불리던 사람이라고 해도 불똥이 튀지 않도록 멀리 떨어지려고 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아하즈왕의 유다가 위태로워졌을 때 다른 어떤 나라도 그냥 그 위태로움에 함께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하즈왕이 하느님 보다 더 믿었던 아시리아는 얻을 것이 있기 때문에 도와주겠다고 한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하즈와 유다의 위태로움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위태로움에 함께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당신이 표징을 보여 줄 테니 당신께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아하즈 왕은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서 자신과 유다를 구해주실 수 있는 유일한 하느님을 거절합니다. 자신이 세운 인간적인 계획과 세상의 힘이 당장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토록 어리석게도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하느님의 손을 놓아버립니다. 아마 우리의 삶도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자비는 인간의 거절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세우신 왕에게 거절당하신 하느님께서는, 수백 년 뒤 변방의 작고 초라한 마을 나자렛으로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아무런 힘도, 내세울 것도 없는 평범한 처녀 마리아에게 다시 한번 '임마누엘'의 약속을 건네십니다.
그리고 아하즈가 인간의 손을 잡으며 하느님을 거절했던 그 자리에, 성모 마리아는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며 온전한 믿음으로,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을 잡으며 응답합니다. 우리의 위태로운 삶 한가운데로 들어오시려는 하느님의 간절한 사랑이, 마리아의 순명을 통해 열매를 맺게 된 것이지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 각자의 삶 역시 크고 작은 바람 앞에 흔들리는 등불과 같습니다. 건강을 잃을까 봐,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할까 봐, 혹은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무너질까 봐 당장 내일의 편안함을 장담할 수 없는 위태로움 속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내 삶이 그렇게 위태로울 때, 우리는 과연 누구의 손을 잡고 있습니까? 아하즈 왕처럼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세상의 힘, 재물, 혹은 사람이라는 '아시리아'에게 눈을 돌려 손을 내밀고 있지는 않는 가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내 위태로움에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순간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제물로 바쳐지신 예수님의 손을 놓아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주님 탄생 예고 축일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위태롭고 비참할 때, 불똥이 튈까 멀어지는 세상의 인심과 달리 오히려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분명한 표징이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당신의 대답으로 인해서 당신의 목숨까지 위태로워 질 수 있는 그 상황에도 하느님을 신뢰하며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셨을 때, 보이지 않던 하느님의 약속은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신 예수님, 곧 참된 '임마누엘'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도 마리아처럼 두려움을 넘어 하느님의 내미신 손을 굳게 맞잡을 수 있도록 합시다. 내 삶이 비록 풍전등화처럼 흔들리고 위태로울지라도, 기꺼이 내 삶에 동참하시어 곁에 머무시는 하느님께 온전한 신뢰의 Fiat 이라고 응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의 흔들리는 삶의 자리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은총과 평화가 우리 안에 머물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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