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시기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고, 우리는 이제 곧 오실 아기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는 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 경위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 탄생의 과정은 낭만적인 동화가 아니라, 한 남자의 깊은 고뇌와 일생일대의 '결단'으로 시작됩니다. 바로 성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강론을 준비하며 '혼인은 일생의 중대사' 라는 누구가 그렇게 말하는 평범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무거운 진리를 다시 묵상하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결혼을 '사랑의 결실'이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그 사랑이 단지 두 사람의 뜨거운 감정이나, 눈에 콩깍지가 씌인 상태만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혼인은 두 사람만의 결합을 넘어, 양가 가족과 친구, 그리고 주변 이웃들의 삶에까지 파장을 미치는 사회적이고 영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감정만 믿고 함부로 뛰어들 수 없으며,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 속 요셉 성인을 보면, 그는 약혼녀 마리아가 자신과 살기도 전에 잉태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배신감에 치를 떨 수도, 분노로 소란을 피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율법대로라면 마리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돌을 던지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가 그랬다고 해도 아무도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 할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의로움'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냉정함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명과 존엄을 보호하려는 '신중한 사랑'을 뜻합니다. 그는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아,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보여준 사랑의 무게입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 사건이 가져올 파장과 상대방의 안위를 깊이 생각한 것입니다.
바로 그 고뇌의 밤에, 주님의 천사가 꿈에 나타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라."
하느님께서는 감정에 취해 덤벼드는 자가 아니라, 현실의 무게를 알고 고뇌하며 책임지려 하는 이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 것은, 단순히 감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결단이었고, 아내와 그 태중의 아기를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지켜내겠다는 신념이었습니다.
참된 사랑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결단의 연속'입니다. "이 사람이면 내 인생이 즐겁겠지"라는 기대보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고통도 나누어질 수 있겠다. 어떠한 어려움도 함께 이겨 낼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들 때, 우리는 비로소 혼인이라는 성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는 그저 설렘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내 삶의 무게를 함께 지탱해 줄 '동반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부로 약속할 수 없으며, 매 순간 깨어 기도하며 신중하게 서로를 아끼고 존중해야 합니다.
성 요셉이 보여주신 그 '신중한 침묵'과 '용기 있는 책임'이 우리 가정 안에 깃들기를 바랍니다. 감정은 식을 수 있지만, 책임 있는 사랑은 시련 속에서 더 단단해집니다.
대림 시기,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은 바로 요셉과 마리아의 그 단단하고 신중한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나셨습니다. 우리 역시 가벼운 감정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는 무겁고도 거룩한 사랑으로 아기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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