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에 집으로 향하는 길이 불 빛이 환하고 넓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과, 어둡고 비좁고 사람도 별로 없는 길이 있다면,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하고 넓은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조금 더 돌아가야 한다고 해도 어둡고 비좁은 길은 위험해 보이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목적지가 같은 경우에는 당연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두 길이 향하는 곳은 분명히 다릅니다. 넓고 사람이 많은 길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고, 좁고 사람이 적은 길은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최종 목적지를 보고 선택을 해야지, 가는 길을 보고 선택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목적지를 보고 길을 선택을 하지,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길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까미노를 가도 목적지가 분명하기 때문에 가는 길에도 그만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제주도에 있을 때 올레길을 걸어 봤는데, 물론 바다나 산의 풍광은 까미노 보다 때로는 좋지만 산티아고라는 목적지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걷고 싶은 길은 아니었습니다. 섬을 한바퀴 걷는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지 않은 좁은 길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 길 때문이 아니라 목적지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 길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목적지가 불확실 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없고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길이 중요하고 목적지는 일단 지금 쉽게, 즐기면서 가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오늘 열왕기 하권에 나오는 히즈키야 임금은 아시리아에 의해서 다른 나라들이 전멸당하는 것을 보면서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가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협박에 굴하는 선택을 하지 않고 하느님을 선택합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하며 기도합니다.
히즈키야 임금이 선택한 길은 눈앞에 보이는 멸망의 두려움 속에서도 좁고 험한 '믿음의 길'이었습니다. 강대국 아시리아의 조롱과 현실적인 위협 앞에서도 그는 눈에 보이는 넓고 쉬운 타협의 길이 아니라,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생명의 주님이신 하느님을 향한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아시리아 군대를 물리치시며 그 믿음의 목적지에 구원이라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섭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넓고 편안한 길, 많은 이들이 걷는 길을 권유하며 그곳이 안전하다고 속삭입니다. 목적지 없는 여정이라면 눈에 보이는 대로 넓고 편한 길이 정답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라는 분명하고도 단 하나뿐인 목적지가 있습니다.
목적지가 분명하기에, 우리는 기꺼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 남들이 찾지 않는 좁은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오늘 미사를 봉헌하며 예수님의 약속에 대한 굳건한 확신과 믿음을 청합시다. 히즈키야 임금처럼 어떤 위기와 유혹 속에서도 하느님만을 신뢰하며, 생명으로 이끄는 그 좁은 길을 매일 충실하게, 그리고 기쁘게 걸어가는 은총의 여정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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