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오로는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동포들의 생각에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말하고 계십니다. 자신들의 계획과 생각과 지식에 매여서 하느님의 일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우리 주위에도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당신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할 일 없이 그냥 쉬고 계신 분이 아닌 것이지요.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러한 하느님의 일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삶에 사로 잡혀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알아 볼 수 있는 길은 바로 사랑을 통해서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이 아닌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바로 이세상을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은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느냐?” 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분명히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이 하시는 일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못 마땅해 한 것은,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 밖에 모르는 이기심과 자신들의 삶이 하느님 보시기이 좋은 삶이라는 교만에 사로잡혀 다른 이들을 업신여기고 사랑할 줄 모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화가 나도록 율법을 일부러 어기시는 것이 아니라 율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병든 이를 고쳐 주시는 것은 당신의 힘을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무리 안식일이라고 해도 병든 이를 고쳐주는 것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 위에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교회에서도 교회 법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믿음이며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기도해도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없다고 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마음안에 사랑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사랑이신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사랑을 실천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자신들을 위한 일이라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는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이라고 해도 자신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바로 끌어내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무것도 안하고 바라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 세상에서 당신의 뜻을 알고 따르는 일을 통해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그러한 하느님을 알아보고 그분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열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 안에서 주님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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