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보는 작은 씨앗 하나에는 놀라운 생명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씨앗이 단단한 껍질 속에 머물러 있기만 한다면, 아무리 좋은 땅에 떨어져도 결코 싹을 틔우지 못합니다. 생명이 자라기 위해서는 반드시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오늘 예레미야 예언서와 마태오 복음의 씨앗 비유는 바로 이 ‘껍질을 깨는 과정’, 곧 생명이 확장되는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줍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옛 계약의 상징이었던 계약 궤와 지성소가 더 이상 하느님의 현존을 가두어 두는 장소로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메시아 시대가 오면 하느님의 영광이 지성소의 휘장을 넘어 예루살렘 전체를 비추고, 나아가 모든 민족에게 퍼져 나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특정한 공간과 특정한 민족 안에 머무르지 않고, 껍질을 깨고 온 세상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자신들만의 울타리 안에 가두려 했습니다.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어느 순간 교만으로 변했고, 율법은 생명을 키우는 도구가 아니라 타인을 배척하는 견고한 벽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신들은 안전한 껍질 안에 머물면서, 이방인과 죄인들은 철저히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껍질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 각자와 공동체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은 무엇일까요. 나를 드러내고 인정받고자 하는 명예욕, 현세의 것에 집착하게 만드는 물질욕, 나와 내 가족만을 우선시하는 이기심—이 모든 것이 우리를 가두는 껍질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공동체 안에서 쉽게 깨지지 않는 껍질 중 하나는 ‘끼리끼리 문화’입니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만 어울리는 모습은 겉으로 보기엔 친교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낯선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공동체적 이기심입니다. 가톨릭 신앙의 보편성을 스스로 가로막는 폐쇄적인 태도입니다.
이러한 껍질은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우리 안의 단단한 껍질을 부수는 힘은 오직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 생겨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스스로를 낮추셨으며,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만들어 놓은 경계를 허무셨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의 식탁에 함께 앉으시며, 그들에게 한없는 자비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 앞에서 부족한 죄인이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먼저 자비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닫고 그분의 마음을 닮아가려 할 때, 우리를 감싸고 있던 껍질들은 서서히 허물어질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우리의 단단한 껍질을 기꺼이 깨뜨립시다. 우리 공동체가 낯선 이웃과 소외된 형제자매에게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고,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풍성한 하느님 나라의 열매를 함께 맺어 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이 미사를 봉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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