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주임 신부님 강론

제목주님 봉헌 축일2026-02-02 09:33
작성자 Level 2

오늘 우리는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원래는 촛불을 들고 행렬을 하는 것이 전례안에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간단하게 한다고 해도, 우리는 빛으로 오신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 이자리에 모였습니다.  

봉헌의 삶이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하느님께 봉헌된 삶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여러분들은 어떤 모습이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나요그리고 오랜 시간을 신앙생활을 오시면서 시메온이나 한나와 같이 주님을 기다리며 그분의 뜻에 자신이 모든 것을 온전히 봉헌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율법에 따라 부모님에 의해서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되시는 아기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평생을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살아오며 성전에서 그분을 기다려온 시메온과 한나 예언자도 만납니다.

냉정하게 세상의 눈으로 사람의 삶을 바라보면 과연 이들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에게, 아니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조차 매력적으로 보였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화려한 성공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권력도 없는, 어찌 보면 고독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삶이었습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주님께 저를 봉헌합니다", " 삶을 드립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피정이나 어떤 강의를 통해서 마음을 새롭게 하려고ㄷ 합니다하지만 솔직한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을 온전히 하느님께 내어드리는 일에 분명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할 없을 것입니다오늘 말라키 예언서는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예언자는 주님께서 "제련사의 "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은 분이시라고 말합니다. 금과 은을 깨끗하게 하려면 불에 녹여 불순물을 태워 없애야 하고, 옷감을 희게 하려면 독한 잿물에 빨아야 합니다.

우리가 봉헌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안에 있는 욕심, 세상의 즐거움,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자존심이라는 불순물이 태워지는 과정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하느님 뜻대로만 살다가, 세상의 즐거움은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고 손해만 같다는 두려움입니다세상 흐름과 다르게 살다가 사람들로부터 멸시받거나, 소위 '왕따' 당할지도 모른다는 소외감에 대한 공포입니다하느님에게나 아니면 이웃에게나 뜻을 굽히는 것이 마치 자존심을 잃는 패배처럼 느껴지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봉헌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말은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렇게 살아가기는 참으로 힘들어합니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너무나 많고, 그것을 놓자니 너무나 아까운 것이지요.

형제자매 여러분, 모든 망설임과 두려움의 가장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겠습니까그것은 결국 '하느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불신'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놓으면 추락할 같지만, 실은 순간 하느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신다는 것을 온몸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메온은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서야 비로소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다" 고백합니다자신의 삶을 온전히 봉헌했을 그에게 찾아온 것은 상실감이 아니라 기다림의 완성과 세상이 없는 참된 평화였습니다만일 그가 그러한 평화를 세상에서 찾았다면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봉헌은 잃는 것이 아니라, 작은 손에 쥐어진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크신 손을 잡는 것입니다. 우리가 손으로 있는 것이 실제로 얼마나 될까요금가루를 쥐어도 얼마 되고 돈다발을 쥐어도 얼마 됩니다그러나 하느님의 손에는 우리가 상상할 없는 평화와 사랑이 있습니다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봉헌하는 이들에게 손을 펴서 쏟아 부어 주시는 것이지요그러므로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것을 잃는 두려움 이겨내고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펴서, 시메온과 같이 빛으로 오신 주님을 우리 품에 안는 복된 삶이 있도록 두려움을 이겨내고 우리의 작은 손을 주님을 향해 있는 용기를 청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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