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할 때가 많습니다. 부부가 혼인하기 전에 서로에 대한 어떤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큰 기대를 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공부에 관한 것이든지, 삶의 어떤 모습에 관한 것이든지 기대를 거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그 밖에도 친구들이나 직장에서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들이 많이 있고 때로는 그것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에 따라서 서로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길 수 있고 관계가 복잡해지기도 하지요.
제자들은 모르긴 몰라도 예수님께 큰 기대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행하시는 기적들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만큼 기대하는 것도 많았겠지요. 그런데 그 기대는 아마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 하실 것이라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인생도 앞날이 밝다는 기대, 예수님께서 세우실 나라에 한 자리 차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들을 위한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하지만 바로 사탄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과 같이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기준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신께서 받으실 고난과 지도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자신들의 기대에 벗어나는 말씀을 하시자 바로 베드로가 나서서 반박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예수님께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고 자신의 스승을 위한 것 같지만, 결국에는 자신들의 기대가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한 이유가 더 컷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에 대해서 기대를 하십니다. 창세기의 말씀에서 노아에게 복을 내리시고 계약을 맺으시는 것은 노아와 그 후손들이 그 계약에 충실하리라는 기대를 하시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와 다른 것은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위해서 사람에게 기대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대는 언제나 사람이 당신의 말씀에 충실하며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이지요. 사실 사람이 그 기대를 저버리고 죽음을 선택해도 하느님께 해가 되는 것이나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그 기대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는 언제나 자신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조금이라도 자신을 위한 것이 없다면 거짓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기대를 하면 안 됩니다. 자신을 기준으로 해서 누군가에게 기대를 한다면 세상에는 그 기대를 이루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녀도 그렇고 아내나 남편도 그렇고 부모도 그렇고 그 누구도 상대방이 기대하는 모든 것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탄은 베드로에게 한 것과 같이 우리가 여러가지 이유로 기대하는 것을 정당화 하도록 합니다. 그러면 분명히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기대하면 분명히 실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들, 내 남편이나 아내, 내 자녀나 부모들, 내 지인들, 친구들은 내 기대를 충족시키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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