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의 아내 헤로디아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과 나중에 유배되었다는 것 밖에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큰 욕심을 가지고 있는 지, 그리고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에서 돈 욕심에 얽매여 살지 말고 가진 것으로 만족하라고 하는데, 헤로디아는 가진 것으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사람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헤로디아는 더 가지기 위해서 헤로데의 이복 동생과 이혼을 하고 헤로데와 혼인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있을까요?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한다면 헤로디아에게 세례자 요한을 죽이도록 한 악은 우리 에게도 똑 같은 일을 벌이도록 할 것입니다. 헤로디아 뿐만 아니라 지금 세상을 봐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악에 이끌려서, 자신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악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어렵고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죽이기 까지 않는다고 해도 큰 고통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살면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세례자 요한에게는 그러한 욕심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가 메시아 일수 있다고 생각할 때도 그는 분명하게 자신은 아닐 뿐만 아니라 오시는 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 조차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헤로디아나 헤로데나 다른 사람들을 죄를 짓게 한 악이 힘을 쓸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 악에 취해 살았던 헤로디아가 과연 행복했을까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받쳐 들고서 기쁘고 평화로웠을까요?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녀의 욕심은 분명히 거기서 멈추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향해서 든 욕심을 부리면 아마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욕심은 악에게 우리의 영혼의 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만 열려야 할 영혼의 문을 우리를 죽이려는 이에게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돈과 재물을 향한 욕심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면서 이세상에 아무것도 없이 사람이 되어 오셨고, 어제 복음에서 와 같이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러한 악의 세력이 우리를 덮어 씌우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듯이 가지면 가질수록 만족하지 못하고 더 채우려고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세례자 요한과 같은 겸손이 필요하고 그와 같은 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비움은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을 향해 문을 열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 주시고, 그렇게 될 때 우리에게는 더 필요한 것이나 바라는 것이 없을 것이고, 없어도 주님의 평화와 기쁨안에 머무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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