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해서 그물을 던지면 보통 어떤 고기를 잡을지 정해 놓고 하게 됩니다. 그냥 아무거나 잡자고 하면서 무작정 그물을 던지지 않습니다. 밤새 그물을 던진 베드로와 제자들도 어부로 살아온 세월이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잡으려고 하는 고기가 어디에 가면 있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보면 그들을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고도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그 노력의 열매,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이지요. 아마 많이 허탈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그 그물에 자신들이 원하는 고기가 잡히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참하게 돌아가셨으니, 아마 3년을 그물을 던졌는데 자신들이 원했던 것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는 허탈감과 절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다 도망가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베드로와 제자들은 물론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고기 잡이를 나간 그들의 모습에서는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베드로를 모르는 사람이 그 두 모습을 봤다면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성령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는 대사제와 그 가문 사람들 앞에서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내가 던지는 그물의 목적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을 받기 전, 베드로는 '내가 원하는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던졌습니다. 자신이 계획한 목표와 기대가 있었기에, 그것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 절망했고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해진 베드로는 다릅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속으로 '오늘 내가 저 사람들을 설득해서 오천 명을 회개시켜야지' 하고 자신이 거둘 열매를 미리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그저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하라는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여 입을 열었을 뿐입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쥐어짜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열매가 맺힐지 그 결과를 하느님께 온전히 맡겨드린 것입니다. 그가 순종으로 던지 그물에 하느님께서는 오천 명의 회개라는 상상치 못할 열매로 채워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각자의 삶의 바다에서 매일 열심히 그물을 던지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도 성령을 받기 전의 베드로처럼, '내가 원하는 고기'만 잡으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정해놓은 방식, 내가 원하는 결과만 고집하며 하느님께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조르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래서 내 뜻대로 그물이 채워지지 않으면 "역시 안 돼, 기도해도 소용없어" 하며 쉽게 절망하고 고기잡이를 포기해 버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신 것과 같이 다가오셔서 당신이 말씀하시는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십니다. 내 상식과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더 잘 압니다", "해봤자 안 됩니다"라는 굳어버린 마음이 오늘 성령의 불길로 모두 녹아 버리도록 주님께 청합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몫은 내 고집을 꺾고, 그저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한번 사랑과 용서, 그리고 희망의 그물을 조용히 던지는 순종입니다. 그 그물에 무엇이 잡힐지, 열매가 얼마나 클지는 온전히 하느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과를 주님께 온전히 맡겨드리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순종의 그물을 던질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빈 그물을 당신의 은총으로 가득 채워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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