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카 예언서의 말씀을 들으면 해산하는 여인이 성모님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 여인이 낳은 아이, 이스라엘의 목자로 나설 아이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바로 오늘 마태오 복음에서 그 예언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지만 예수님 전에 미카 예언자의 말을 듣거나 예언서를 읽은 사람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언제 일어날 일인지 모든 것이 애매하고 추상적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물론 그 중에는 예언자를 통한 하느님의 말씀을 믿으며 아직 보이지 않는 것, 구체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매일을 살아갔을 것이지만, 또 어떤 이들은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살아갔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성경과 교리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내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분이 나를 어떻게 이끄시는지 묻게 될 때면 모든 것이 애매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종종 확실한 표징이나 당장의 응답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주어지지 않을 때면 쉽게 무관심 속에 빠지거나 신앙을 머릿속 생각으로만 남겨두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이 성모님을 통해 역사 안에서 구체적인 현실이 되었듯이, 그분의 뜻은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느님과 애매한 관계가 아닌, 살아 숨 쉬는 확실하고 구체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어떻게 구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그 해답을 우리는 성모 마리아의 발자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놀라운 소식을 전했을 때, 마리아에게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한 완벽하고 확실한 보증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 불확실하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며 당신의 의지를 담은 구체적인 '순명'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이러한 성모님의 응답은 단 한 번의 대답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의 출산, 이집트로의 피난,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서 아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그 모든 고통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 속에서도, 성모님은 주어진 일상의 무게를 침묵하며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기적 같은 눈에 띄는 징표 속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어머니로서 감당해야 했던 그 구체적이고 평범한 삶의 길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과의 관계는 모든 불확실성이 사라진 뒤에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호해 보이는 현실 속에서도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가정과 직장, 일상 생활안에 주어진 나의 의무에 충실할 때, 미움 대신 용서를 선택할 때,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때 단단해집니다. 우리의 기도가 허공을 맴도는 막연한 단어들이 아니라, 내 삶의 기쁨과 슬픔, 상처와 현실적인 고민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 진솔한 대화가 될 때 비로소 하느님과의 관계는 더 이상 막연하지 않고 구체적이 됩니다.
오늘 하루, 저 멀리 있는 추상적인 신앙이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어려운 삶의 현실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구체적으로 살아냅시다. 막연함을 넘어, 일상 속 작은 사랑의 실천과 기도를 통해 우리 각자의 삶이 주님의 뜻을 세상에 드러내는 구체적인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어머니께 전구를 청하며 이 미사를 다 함께 봉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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