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자신에게나 아니면 다른 이들에게 ‘정신차려’ 라는 말을 쓸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할 때 집중하지 않고 엉뚱한 실수를 하거나, 어떤 잘못을 했을 때 그렇게 말합니다. 깨어 있어야 하는데 졸음에 취해 정신을 못차릴 때도 스스로 정신차리라고 하며 꼬집거나 할 때도 있지요.
이렇게 정신을 차리라는 말은 봐야 할 것을 바로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베드로 1서의 말씀에서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말의 원어를 보면 허리를 동여맨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로 행동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말입니다. 정신줄을 놓고 있다면 준비하고 있는 것은 생각 할 수 없습니다. 야구에서 타자가 투수가 공을 던지는데 정신을 전광판에 나와 있는 자신의 모습에 쏟고 있다면 절대 공을 칠 수 없지요. 그런 선수는 감독이 다시는 출전하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 야구 선수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매 순간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이라는 공을 던져주시는데, 우리의 시선은 자꾸만 세상이라는 화려한 전광판을 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던지시는 뜻을 결코 쳐낼 수 없습니다.
오늘 마르코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합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이 말은 바로 세상의 화려한 전광판에서 눈을 돌려,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참된 목표물에 온전히 시선을 고정했다는 뜻입니다. 봐야 할 것을 제대로 보기 위해, 베드로 1서의 말씀처럼 '무지하던 때의 이전 욕망'들을 과감히 내려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따름의 길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분명히 하십니다. 현세에서 백 배의 상을 받겠지만, "박해도 받을 것"이라고 덧붙이십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만 바라보려 해도, 세상의 유혹은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고 때로는 어리석다며 조롱할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 늘 마음의 허리를 동여매고 있지 않으면, 나약한 우리는 언제든 다시 전광판으로 눈이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오늘은 성 필립보 네리 기념일 입니다. 성인이 활동했던 16세기의 로마는 물질적 풍요와 권력욕이 넘쳐나던, 말 그래로 도시 전체가 거대하고 화려한 전광판 같았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그 유혹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성 필립보 네리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천국을 더 좋아합니다!"
그는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기 딱딱한 표정으로 엄격한 고행만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느님 안에 머무는 참된 기쁨과 유머로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웠습니다. 시장 바닥과 뒷골목이라는 일상 한가운데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거룩함을 살아낼 수 있는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억지로 견디는 신앙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향한 기쁨으로 스스로 마음의 허리를 단단히 동여매게 한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간곡히 권고합니다.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거룩함은 제단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일하는 그 모든 일상의 순간 속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거룩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정신없게 만들고 내 영적 시선을 훔쳐 가는 '전광판'은 자신에게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세상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성 필립보 네리의 고백처럼 "나는 천국을 더 좋아합니다"라고 되뇌며, 언제든 주님의 뜻을 향해 달려나갈 수 있도록 마음의 허리를 굳건히 동여매는 은총을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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